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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보는 세상

당신은 알피니스트입니까?

by 한상철 2022. 10. 26.

당신은 알피니스트입니까?  

한국등산연구소 제3회 세미나의 제목입니다. 한국 알피니즘이 맞은 위기와 변화란 주제를 다룬 세미나로 많은 분들이 함께 하였습니다.

 

알피니스트란 제게는 불편한 용어기도 합니다. 도전과 모험을 즐기는 산행을 좋아하고는 있지만 알피니스트는 아니기 때문일 겁니다. 제가 경험한 만년설은 일본 북알프스의 여름 뿐입니다.

 

알피니즘이란 만년설을 품고 있는 고산의 암벽과 얼음을 극복하며 오르는 행위로 유럽알프스 등반에서 비롯되어 이제는 고산등반의 일반명사로 굳어져 얼마 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목록에 등재되기도 하였습니다.

 

만년설이 존재하지 않는 한국에서 알피니즘을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는 저로선 여전히 혼란스런 문제입니다.

 

낮은 산이라고 할지라도 관광 삼아 오르는 사람이 있고 도전과 모험을 찾아 오르는 사람이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알프스를 오르는 방식 역시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습니다. 가이드를 통해 관광으로 오르는 행위를 알피니즘이라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하물며 히말라야에서조차 돈으로 오르는 현실에 막연히 만년설의 고산을 오르는 행위를 예찬할 수는 없다고 봅니다.

 

저로선 사시사철 산을 오르는 것에 제한을 두지 않기 위해 등산과 관련한 기술을 배우고 다듬어 보다 안전하고 보람된 산행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걸어서 갈 수 없는 암릉을 넘기 위해 암벽등반 기술을 배우고, 얼어 있는 계곡의 수없이 이어지는 크고 작은 폭포를 넘어서기 위해 빙벽기술을 연마하고 있습니다. 허리까지 빠지는 눈을 헤치며 능선을 걷기 위해 체력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비가 오면 비 온다고 눈이 오면 눈 온다고 위험을 빙자하여 입산을 통제하고 있는 한국의 현실에서 알피니즘을 논하는 건 어쩌면 등산에서의 귀족주의가 아닐까 싶은 마음도 없지 않습니다. 우리는 너희들과 다르다는 자족감의 표현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결국은 한국의 알피니즘이 맞은 위기도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진입장벽이 원인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인증을 위해 산을 찾는 젊은 산친구들과 스포츠클라이밍으로 더 높은 난이도를 꿈꾸며 훈련하는 수많은 클라이머들에게 새로운 꿈을 꿀 수 있도록 이끌어줄 기성세대가 높은 장벽으로 그들과 분리되어 있는 건 아닐까 고민해 봅니다.

 

시대가 변하여 국가나 조직의 명예를 위해 고산을 찾는 정서가 개인의 체험을 우선하는 현실과 충돌하고 있는 것도 기성세대와의 단절을 부추기는 요인일 수 있다고 봅니다. 기성세대가 갖고 있는 위기란 변화하는 시대상황을 따르지 못하는 불편함일 수도 있습니다.

 

이번 세미나에서 무엇보다 감명 깊었던건 100세를 맞는 김영도님의 산사랑입니다. 몸이 따르지 못함에도 산에 대한 열정이 식지 않는 모습에 감동할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