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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등산을 위하여

심설산행

by 한상철 2015. 12. 17.

덕유산에서의 안타까운 사고소식에 심설산행과 관련하여 간단하게나마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요즘은 예전만큼 눈이 많이 내리지는 않지만 기후변화가 심하여 한꺼번에 폭설로 내리는 경우가 많은 것 같습니다. 겨울이 시작할때는 서해안으로 겨울이 끝나갈때는 동해안으로 폭설이 내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요즘 국립공원에서는 눈이 조금만 내려도 입산금지가 되어 마땅히 심설산행을 할만한 기회도 많지 않은게 현실입니다. 그러다보니 심설산행을 경험할 기회도 줄어들어 심설산행을 배울  수 있는 환경도 적어지는 셈입니다. 눈이 없는 아래쪽 지방에서 조금만 눈이 내려도 교통대란이 일어나는 것처럼 이런 상황에서 어쩌다 만나는 어려운 환경에서 인명사고로까지 이어지는게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보통 겨울산에서 러셀로 불리고 있는 경우는 눈길에 처음 흔적을 남기는 것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물론 틀린 말은 아니겠지만 보통 걷는 것과 큰 차이가 없는 상황을 굳이 러셀로 부르기는 그렇지 않을까요. 러셀이라고 하면 산행진행에 방해가 되는 눈을 뒷사람을 위하여 치우며 진행하는 것을 말하는게 올바르지 않을까 싶습니다. 보통 발목 정도 잠기는 눈은 방해가 되기보다는 즐거운 추억을 만들기에 좋죠.


높은 산에서는 적설량으로 등산로 상황을 예측하기 어렵습니다. 지형에 따라 바람이 눈을 몰아놓기 때문입니다. 10cm 정도 눈이 내렸다고 하더라도 바람이 몰아놓은 능선상에는 무릎가까이 눈이 쌓여있을 수 있습니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라면 무한히 쌓이지는 않습니다. 쌓이는 눈도 바람의 영향을 받으니까요. 하지만 지속적으로 눈이 쌓이고 얼어 그위에 눈이 새로 쌓이고 하면 늦겨울엔 엄청난 깊이로 눈이 쌓일 수도 있습니다.


초겨울의 경우 10cm 정도 눈이 내리고 바람이 몰아 놓는다고 해도 종아리에서 무릎 정도를 넘지는 않습니다. 공식적인 것은 아니지만 3배 정도 쌓인다고 보는게 일반적일 겁니다. 10cm 적설량이면 30cm, 20cm 정도 적설량이라면 60cm 정도로 예측해 볼 수 있습니다. 물론 지형에 따라 차이가 많을 수는 있습니다. 그리고 눈이 많이 내린 한겨울에는 예측하기 어려운 정도로 눈이 쌓인 능선을 만나기도 합니다.


앞에서 이야기했듯이 러셀은 뒷 사람을 위한 배려입니다. 혼자 발자욱만 남기고 간다면 곧바로 바람에 의해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지만 러셀로 눈길을 헤치고 간다면 바람에 덮이더라도 골의 흔적이 남아 뒷사람에게 눈길의 흔적을 남기게 됩니다. 겨울엔 앞사람의 흔적이 산길이 되는 셈입니다. 또한 앞사람이 밟고간 흔적은 얼어 뒷사람이 깊이 빠지지 않습니다.


등산로에 눈이 무릎 정도만 쌓이면 지면이 높아져 등산로를 찾기가 어렵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산길을 찾아 러셀을 하는것은 경험을 통해 배우는 것일 겁니다. 가능하면 심설산행은 잘 아는 산길을 통해 경험을 쌓는게 필요합니다.


심설산행은 상황에 따라 다양한 방식으로 길을 열어가게 됩니다. 인원이 여럿이라면 체력이 좋은 사람들이 앞쪽에서 산행을 하는게 좋습니다. 제일 앞쪽에서 걷는 사람은 눈길을 낸다기 보다는 눈을 깨면서 간다고 해야 합니다. 그 다음 사람들은 앞사람이 깬 눈을 치우며 진행하고 4~5번째부터 길을 만들면서 가면 됩니다. 인원이 소수일때는 가능한 앞사람이 길을 열어가고 교대로 진행하는 방식이 좋습니다. 러셀은 보통 산행보다 체력소모가 큰만큼 속도를 늦추고 지치지 않도록 체력을 조절하는게 제일 중요합니다.


평지는 갈지자 형식으로 안쪽에서 바깥으로 발을 움직여 눈을 열어주는게 보통입니다. 눈이 솔아 있거나 하면 앞 사람은 발자욱을 남기고 뒷사람은 그 발자욱 주변을 넓히는 방식으로 진행하면 됩니다. 장애물이 있거나 위험구간은 눈을 그냥 깨기보다는 눈을 다져서 발판을 만들거나 위험물이 노출되도록 해주는게 좋죠. 눈이 많을 경우 발로 두세번 정도 다져주면 빠지지 않고 진행할 수 있는데 눈을 다질때 체력소모가 없어야 합니다.


문제는 오르막 러셀입니다. 눈이 많으면 발을 옮기는 것조차 쉽지 않습니다. 또한 급경사에서는 눈이 무너져 뒤로 밀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오르막에서 무릎 이상을 넘는 눈은 그냥 밟고 오르기 어려우므로 눈을 아래쪽으로 무너뜨리며 진행하는게 요령입니다. 발이 올라가지 않을만큼 눈이 많으면 무릎으로 일차적으로 눈을 무너뜨리고 다음에 발로 눈을 헤치는 방식으로 올라야죠. 서두르지 않고 체력소모를 줄이는게 절대적입니다.


하산길은 눈을 무너뜨리며 내려서는 것이므로 힘들지는 않으나 길을 찾기는 오르막보다 어렵습니다. 아무래도 낮은 곳에서 올려다보는 산길보다는 위에서 내려다보는 산길이 눈이 많은 상황에서는 길찾기가 더 어렵습니다.


심설을 헤치고 진행하는 상황을 정확히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진행속도를 수시로 확인하여 산행계획을 재검토 하는것도 중요합니다. 산행시간이 길어져 밤까지 산행하는 상황이 발생한다면 산행속도는 더 늦어지고 위험상황에 처할 수 있습니다. 밤엔 눈속에서 길찾기가 훨씬 어려워지고 기온이 급격하게 떨어져 위험요소가 많아집니다. 심설산행에서 무엇보다 어려운건 길을 찾아가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초겨울이라면 큰 차이가 없을 수 있겠지만 한겨울에 탈출을 한다면 계곡보다는 능선을 이용하는게 좋습니다. 겨울동안 쌓인 눈의 깊이가 바람이 있는 능선과 바람이 없는 계곡은 상황에 따라 차이가 엄청날 수 있습니다. 물론 이러한 상황도 지형의 조건에 따라 달라집니다. 초겨울도 계곡이 완전히 얼지 않고 눈이 살짝 덮인 상황이라면 진행은 훨씬 어려워집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겨울산이 갖는 매력이 많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위험한 상황도 직면하게 되는게 겨울산입니다. 철저한 준비로 위험을 안전하게 극복하는게 겨울산행의 낭만이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