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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보는 세상

봄철 산나물 채취와 관련하여

by 한상철 2008. 5. 13.

먹고 살기 어렵던 시절 이른봄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하면 바구니를 들고 들과 산으로 봄나물을 채취하던 모습이 우리 어머니들이다. 이젠 그런것도 추억이 되었는지 산에 가보면 너도나도 산나물을 뜯느라 분주하다. 산나물을 뜯는 것 역시 현대인들이 자연을 느끼고자 산을 찾는 마음의 연장이리라.

 

등산 역시 많은 사람들이 산을 찾으면서 새로운 문화정립이 필요하듯이 산나물 채취 역시 새롭게 생각해볼 문제다.

 

일단 산을 찾는 수많은 등산인들이 무분별하게 산나물을 채취한다면 결국 생태계의 파괴로 이어질 수 있다. 산나물을 채취한다고 해도 재생산할 수 있는 기본적인 개체수는 필요한 법인데 매일 같이 반복되는 수많은 등산객들에 의해 급격한 개체수의 감소는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더구나 산나물을 뜯는 방법조차 알지 못하여 마구 뽑아 가거나 성장순까지 뜯어 버리게되면 식물은 더 이상 자랄 수 없게 된다.

 

다음으로는 독초에 의한 사고문제다. 등산인구가 급격하게 늘고 산나물 등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실제로 산나물을 구분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시골에 오랫동안 살던 사람도 산이 바뀌면 헷갈리는게 식물이다. 실제로 시골의 젊은 아주머니들이 미역줄나무순을 다래순으로 알고 채취하는 모습을 자주 본다.

 

가장 흔하게 일어나는게 개당귀로 인한 독초사고다. 시장에서 사다먹는 신선초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다고 해서 산에서 당귀와 개당귀를 구분할 수 있는건 아니다. 하물며 당귀가 등산로상에 지천으로 널려 있다면 그것 또한 이상한 일이다.

하지만 실제로 산나물과 관련하여 제일 많이 만나는 사고가 개당귀 채취다. 운이 좋아 아는 사람이 독초인 개당귀라고 지적을 해도 고집을 부린다. 강원도 산의 개당귀는 독성이 강하지 않으나 지리산 개당귀는 독성이 강해 적은 양만 복용해도 큰 사고로 이어진다.

 

두번째 많은 유독성식물 채취가 족도리풀이다. 봄철 대표적인 나물이 취나물이다보니 비슷하게 생긴 족도리풀이 취나물로 오인되어 마구 채취되는 실정이다. 적은 양이라면 큰 문제가 아니겠으나 비닐봉지 가득 채취하여 저녁 가족 밥상에 올려진다면 심각한 문제다.

 

이외에도 바꽃(투구꽃)이나 앉은부채, 은방울꽃 등 유동성 식물이 나물로 오인되어 채취되어 사고로 이어진다.

 

이러한 이유가 아니더라도 산나물에 집착하는 모습은 잘못된 행동이다. 봄나물은 먹고살기 어렵던 시절 곡식 양을 줄이고 채소가 나오기 전에 영양분을 섭취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요즘은 겨울에도 싱싱한 채소를 마음껏 먹는 시절이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면 독초까지 법제하여 먹던 시절과 다르다는 이야기다.

 

또한 임자가 없다고 공짜라는 생각은 잘못이다. 산을 통해 자연을 느끼고 체험하는 등산인들이 산을 가꾸고 보호하지 않는다면 그것 또한 도둑 심보에 다름아니다. 자연은 우리에게 무한한 혜택을 베풀지만 그것 또한 그들이 본연의 모습으로 의연하게 자리하고 있을 때이다.

 

실제로 등산로 주변에서 채취하는 산나물의 대부분이 별 가치가 없는 잡풀이다. 특별히 향이 좋거나 식용가치가 높은 것들은 만나기 어렵다. 산삼이 아무곳에서나 자라지 못하는것과 같은 이치다. 그저 산에서 채취했다는 것으로 가치가 있다고 여기기에는 자연이 입는 타격이 크다. 더구나 고사리처럼 생으로 먹지 못하고 삶아서 묵나물로 먹는 나물의 경우는 적은양을 채취하면 쓸모없이 버려지게 된다. 나물을 삶아서 말리려면 웬만한 양으로는 어림도 없다.

 

나는 대단한 환경보호론자는 아니라서 무조건 채취는 하지 않아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싶지는 않다. 정도껏 한다면 자연은 얼마든지 우리에게 혜택을 베풀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다. 높은 산의 숲도 산죽이 자라고 밀림화되어 가면서 점차 산나물이 자랄 수 있는 환경도 사라지고 있다. 산을 찾는 이들 스스로 올바른 가치관을 정립하여 실천해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