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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이야기

뼝대에서 피어나는 동강할미꽃

by 한상철 2009. 4. 10.


산에서 우연히 마주치는 꽃이 있는가 하면 일부러 자생지를 찾아 다녀야 볼 수 있는 꽃이 있다. 자생조건이 까다롭고 희소한 특성 탓이다. 동강할미꽃이 그렇다. 주민들이 뼝대라고 부르는 수직 절벽이 동강할미꽃의 자생지다.

 

유유히 흐르는 동강 바위 벼랑에 적은 개체가 서식하고 있어 시기를 맞춰 일부러 눈맞춤 하러 가야만 볼 수 있는 야생화다. 동강할미꽃을 찾아가는 동강 변의 아름다운 모습도 어느 한곳 그냥 스쳐가지 못하게 한다. 이러한 절경의 깎아지른 암벽에 하늘을 향해 피어있는 동강할미꽃의 모습은 참으로 인상적이다.

 

할미꽃은 양지 바르고 키 큰 식물이 햇빛을 가리지 않는 곳, 물 빠짐이 좋은 비교적 건조한 땅, 특히 호석회식물(칼슘을 좋아하는 식물)이기 때문에 보통의 땅보다 칼슘성분이 많은 땅에서 잘 자라 묘지 등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그리고 할미꽃은 잎자루가 길고 개화기가 되면 길게 자란 꽃줄기 끝이 구부러져 붉은빛 꽃송이가 아래를 향해 핀다.

 

반면에 동강할미꽃은 석회암 바위틈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며 할미꽃에 비해 식물체가 작다. 개화기에 짧은 꽃줄기 끝에 달린 꽃은 해바라기를 하는 것처럼 하늘을 향해 꽃잎을 활짝 벌린다. 바위틈에 뿌리를 최대한 밀착시킴으로써 강풍에 견디고 부족한 양분과 수분조건에 적응한 모습으로 보여진다. 서식환경에 따라 꽃 색이 다양하여(연분홍, 청보라, 붉은 자주, 흰색) 더욱 아름답지만 화피가 길어 `긴동강할미꽃'이란 이름을 얻은 것도 있다.

 


동강할미꽃은 1997년 생태사진가 김정명씨가 야생화 탐색을 위해 동강을 따라가던 중 바위 절벽 위에 피어있는 붉은색 할미꽃을 발견한 것이 계기가 되어 세상에 태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붉은 할미꽃을 발견한 김작가는 할미꽃이 분명하긴 한데 지금까지 그가 보아 온 할미꽃과는 많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알고 할미꽃의 변이종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1998년 자신의 `한국의 야생화' 캘린더에 사진을 싣고 `하늘을 향해 꽃을 피우는 할미꽃'이라고 소개했다. 2년 후인 2000년 세계에서 유일한 식물로 학계의 인증을 받아 `동강할미꽃(Pulsatilla tongkangensis Y. Lee et T. C. Lee. sp. nov.)'으로 학명을 붙이게 되었다.

 

동강할미꽃이라는 새로운 꽃이 알려지면서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봄이 되면 동강으로 달려가 동강할미꽃을 촬영하면서 그 아름다움과 희소성에 매료되어 입소문을 내기 시작한지 10년이 되었다. 꽃이 필 무렵이면 절벽에 사다리를 걸치고 촬영에 몰두하는 모습들을 많이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다 보니 때로는 꽃을 자르거나 몰래 캐가는 몰지각한 사람들이 있어 꽃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다. 아름다운 꽃을 찍는다고 묵은 잎을 뜯어내거나 주변을 치우는 행위도 동강할미꽃에게는 해로운 일이므로 자연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자생환경이 까다로워 인공재배가 어려웠으나 최근엔 영월 농업기술센터에서 재배기술을 확보하여 일부 지역에선 동강할미꽃을 복원하고 화분으로 판매도 시작하여 남획에 의한 멸종위기를 넘기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