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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이야기

높은 산에서 만나는 기생꽃

by 한상철 2009. 6. 7.

 

산에 녹음이 짙어지고 무더위가 시작할 무렵 피어나는 꽃이 기생꽃이다. 능선엔 아직 서늘한 바람이 있어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수고가 그리 어렵지 않은 계절에 높은 산 숲속 그늘진 곳에 피어난다.

 

꽃 모양이 예전 기생들이 머리에 장식하던 화관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보다 아래 사람이나 동등한 위치의 사람에게나 이름을 부르던 습관이 있어 꽃 이름조차 천한 신분을 빗대어 부르게 되었나 보다.

 

작은 꽃이라 그리 화사하지는 않으나 자세히 보고 있으면 그 자태에 기품이 느껴진다. 원줄기에서 잎줄기 없이 돋아나는 여러 잎 사이로 가녀린 꽃대를 올리고 그 끝에 한송이씩 피어나는 하얀꽃이다. 아래쪽으로 갈수록 좁아지는 둥근 잎도 부드러운 곡선미가 느껴진다. 꽃잎의 가장자리는 뾰족하지만 날카롭지 않고 부드러운 선의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7장의 하얀 꽃잎 속에 7개의 노란 수술에 둘러싸인 1개의 암술로 조화를 이룬 모습은 안정감을 준다. 무리를 지어 피어나지만 꽃을 자세히 보고 있으면 도도한 기품의 고독감마저 엿보이는 것 같다. 그냥 무심히 지나칠 수 있는 꽃이지만 알면 알수록 마음이 끌리는 야생화다.

 

기생꽃도 참기생꽃과 기생꽃으로 구분하기도 하는데 일반인들이 구분하기는 어렵고 우리가 만나는 기생꽃은 정확히 참기생꽃이라고 한다.


 

홀딱벗고새의 울음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가파른 산길을 오르는 수고를 거쳐야 만날 수 있는 야생화다보니 막연한 그리움의 갈증으로 만남에 대한 설레임이 더 큰 것 같다. 힘겹게 찾아 기생꽃을 만나면 명기라도 만난 듯 피로가 말끔히 사라진다. 그늘진 숲속에 자리한 꽃 위로 햇살이라도 한줄기 내려앉으면 그 모습은 더욱 아름답다.

 

자생조건이 까다로운 편이라 산이 밀림화되고 산사태 등으로 유실되면서 개체수가 줄어드는 상황이다.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2급 식물로 지리산부터 설악산까지 전국적인 분포를 보이지만 자생지는 극히 한정되어 있다.

 

기생꽃을 만나고 돌아서는 아쉬움은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을 노래하던 옛 황진이의 시처럼 애틋하다.


어져
일이야 그릴 줄을 모르던가

이시랴 하더면 가랴마는 구태어
보내고 그리는 정은 나도 몰라 하노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