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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생화 이야기

산골처녀 얼레지

by 한상철 2011. 4. 13.


얼레지는 이른봄 산에서 제일 흔히 만나는 꽃이다. 어릴때 어머니따라 산으로 봄나물을 뜯으러 가서야 만날 수 있던 꽃이 얼레지다. 언뜻 외국 꽃이름 같기도 하지만 잎의 얼룩반점으로 인해 그리 불리는 순수 우리꽃이다. 강원도쪽에선 삶아서 나물로 묻혀 먹기도 한다.

 

두 장의 잎사귀 사이로 피어오른 꽃대에 6장의 꽃잎이 뒤로 완전히 젖혀진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다. 우리 야생화의 아름다움이 청초하고 단정한 모습의 소박함이라면 단연 얼레지를 떠올릴 수 있다. 처음 야생화에 관심을 갖는 분들은 생소한 이름만큼 얼레지의 독특한 자태에 반하는 이들이 많다. 더구나 군락을 이루어 피기 때문에 웬만한 봉우리 하나가 얼레지 밭인 곳도 있다.

 

꽃잎이 뒤로 맞닿을 정도로 젖혀진 매혹적인 자태는 언뜻 화려함으로 비춰질 수도 있으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참으로 단정함을 느낀다. 물론 산골처녀치고는 파격적인 개방임은 사실이다. 그래서인지 누군가는 바람난 처녀로 얼레지를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나는 그리 보이지는 않고 검은머리를 한껏 빗어넘겨 고운 한복을 차려입은 조선여인의 아름다움을 느낀다.



잎을 뒤로 젖힌 고운자태도 다양하지만 색깔도 참으로 다양하다. 약한 보랏빛이 도는 것부터 진한 분홍빛을 띄고 있고 가끔 흰색의 자태를 만나기도 한다. 뒤로 한껏 젖혀진 꽃잎엔 톱니 같은 보라색 무늬가 선명하다.

 

흰색 얼레지는 워낙 만나기 어려워 알려지기만 하면 금새 훼손되어 버린다. 사진찍는 분들에 의해 꺽이기도 하고 야생화를 파는 이들에게 훼손되기도 한다. 처음 흰색 얼레지를 알고나서 보고픈 마음에 야생화동호회에 올라온 사진을 조심스럽게 문의해 자생지를 찾아가보면 벌써 누군가의 욕심에 사라진 뒤였다.



하지만 야생화를 찾아다니면서 남들보다 자주 만나게 되는 행운을 얻기도 한다. 흰색 얼레지도 그 특성이 일정하지 않은 것 같다. 잎에 흰색의 얼룩이 있는것도 있으나 아예 얼룩이 없는 초록색 잎을 가진것도 있다. 암술대를 둘러싼 수술대의 꽃가루도 검은빛이 있는것부터 노란빛이 도는것까지 있어 특징짓기는 어려울 것 같다.

 

얼레지는 해가 갈수록 뿌리가 깊이 자라므로 채취하기 위해서는 꽤나 공을 들여야 한다. 그래서 무분별한 채취를 막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꽃이지고 씨가 열리는데 특이하게도 씨에서 개미유충과 같은 냄새가 난다고 한다. 때문에 씨가 떨어지면 개미들이 유충을 다루듯이 열심히 개미집으로 물고가서 발아하기 쉬운 땅속으로 운반된다. 하지만 씨가 발아해서 꽃을 피우는데 7년 정도 걸린다고 하니 참으로 인고의 세월을 기다려야 화려한 자태를 만날 수 있는 셈이다.



최근 지자체의 잘못된 개발정책 때문에 지역주민들의 무분별한 나물채취가 문제가 되고 있기도 하지만 토종 야생화인만큼 끈질긴 생명력을 이어가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