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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보는 세상

청와대 개입으로 망칠 뻔한 신년일출 산행

by 한상철 2009. 1. 2.

최근 나라 경제사정이 좋지 못한 관계로 안내산악회들마저 타격을 받고 있다. 근교산행이 아닌 지방산행을 가려면 산행회비부터 자질구레한 준비에 비용이 만만치 않다. 그러다보니 한달에 2번 이상 다니던 지방산행 횟수를 줄이고 대신 근교산행으로 대신하는 추세가 늘어나고 있는 셈이다.

 

서울 근교의 북한산이나 도봉산, 수락산, 관악산 등은 늘어난 등산객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주말이면 하루 평균 수 만 명에 이르는 형편이다. 결국 삶의 질과 관계된 개인의 건강을 위한 취미활동도 제한을 받는 상황이다.

 

이제 모두들 어렵다는 묵은 한 해를 보내고 희망의 새해를 맞았다. 등산객들뿐 아니라 전 국민 모두가 신년 새벽 떠오르는 일출에 지난 어려움을 털어내고 희망찬 새해를 맞고자 기원하였다.

 

내가 이끄는 등산모임 역시 이와 같은 의미로 지리산 촛대봉에서 새해 일출을 보는 행사를 하게 되었다. 일출 산행지로 여러날 고민하다 최근 동해안에 눈이 많이 내려 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 것이란 예상으로 남쪽의 지리산을 택하였다. 그나마 천왕봉 보다는 촛대봉이 사람들이 적을 것이란 생각으로

 

거림에서 새벽에 세석까지 산행하고 산장에서 잠시 떡국이라도 끓여 먹고 촛대봉에서 일출을 보는 계획이었다. 문제는 거림에 도착하여 매표소(탐방안내소)에서 발생하였다. 평소 근무도 하지 않던 매표소에서 관리공단 직원이 입산금지를 통보한 것이다. 처음엔 동트기 2시간 전에야 산행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하지만 다른 날도 아니고 신년 일출을 보는 산행인데 너무 하지 않느냐는 항의에 결국은 청와대의 명령으로 산행을 할 수 없다는 황당한 이야기가 나왔다.

 

내용인 즉은 시민단체에서 이명박 대통령을 반대하는 삐라를 살포하는 행사가 지리산에 예정되어 있어 청와대에서 협조공문이 내려왔다는 것이다. 참으로 어이없는 답변에 쓴웃음이 나왔다.

 

그날 행사의 내용을 나중에 인터넷에 검색해 보니 통일을 여는 사람들이란 시민단체에서 부산 사람들을 중심으로 신년일출 행사가 지리산 삼신봉에서 '2MB OUT 새해소망 띄우기'란 주제로 준비되었던 모양이다. 결국은 관리공단과 경찰의 방해로 행사는 무산되었다고 한다.

 

30여분 가까운 실랑이를 벌인 결과 산행은 할 수 있었지만 참으로 한심하단 생각이 들었다. 청와대에서 일개 시민단체의 이벤트까지 방해하는 처사가 어이없었다. 일 못하는 아랫 사람들의 과잉충성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치부하더라도 요즘 이명박 정부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는 것 같아 답답할 뿐이다.

 

등산을 하다보면 눈앞의 작은 산이 뒤의 큰 산을 가린다. 힘든 마음에 눈앞의 봉우리를 정상이라고 착각하지만 크고 작은 수많은 봉우리를 넘고나서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청와대의 이번 행동 역시 눈앞의 사소한 일에 매여서 정작 큰일은 하지 못하는 상황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근시안적 욕심에 눈앞의 작은 봉우리를 정상이라고 우기는 우를 범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새해엔 국민의 목소리에 좀더 귀를 기울이는 정부가 되길 신년 소망으로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