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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보는 세상

고산등정시비를 바라보며

by 한상철 2010. 8. 27.

여성산악인 오은선씨가 여성 최초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두고 구설수에 오르고 있다. 2009 56일 히말라야 14고봉 완등을 목표로 13번째 오른 칸첸중가(8,586m) 등정과 관련한 시비다. 문제는 14좌 완등을 끝내기 이전 칸첸중가 등정 바로 다음부터 있어왔다. 이러한 시비에도 불구하고 오은선씨는 2010 4월 안나푸르나를 마지막으로 오르면서 여성최초로 히말라야 14고봉을 모두 오르는데 성공했다.

 

히말라야 고봉등정과 거리가 먼 나로서는 남의 일일 수밖에 없는 문제다. 하지만 등산과 관련한 풍조는 히말라야 고봉이든 국내의 낮은 산이든 비슷한 경향을 갖고 있다고 보기에 한마디 짚고 넘어가지 않을 수 없다.

 

오은선씨의 칸첸중가 등정에 처음 문제제기를 한 사람은 당시 히말라야 14좌 완등을 두고 경쟁하던 당사자였다. 그후 외국 언론을 통해 문제를 제기한 파사반 역시 여성 최초 14좌 완등을 두고 오은선씨와 경쟁하던 사람이다. 파사반은 2010 5월 히말라야 14고봉 완등에 성공했다.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란 유행이 꽤나 오래되었으나 히말라야 등정을 공인하는 기구나 단체는 없다. 산악인 스스로 양심에 따라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럼에도 문제가 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다름아니라 히말라야 14좌 완등이란 문제가 상업등반으로 귀결되기 때문이다.

 

예전부터 산을 오르는 것은 다른 스포츠와 달리 경쟁의 대상이 아니라고 하면서도 히말라야 등반에서는 늘상 누가 최초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녔다. 히말라야 개별 고봉을 오르는 것도, 히말라야 고봉을 모두 오르는 것도 이러한 비교에서 자유롭지 못했다. 어쩌면 히말라야 등반은 처음부터 상업적인 등반으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제는 한발 더 나아가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들이 돈만 준비하면 히말라야 고봉 등반이 가능한 상황까지 발전하여 히말라야가 시장판으로 변해 버렸다. 오은선씨 칸첸중가 등정시비도 결국은 누가 여성최초로 14고봉을 완등했는가의 문제다.

 

칸첸중가 등정여부와 관계없이 책임은 오은선씨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오은선씨는 본인이 무어라 변명하던 스스로 이러한 시장통에 뛰어든 당사자다. 스스로 상품성을 만들기 위한 등반이었다면 인증의 책임도 다했어야 한다. 처음 오른 것도 아니고 13번째 고산등정에서 실수라고 변명하는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것도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설사 실수라고 하더라도 상대방에게 물어 뜯기는 것에 억울해 할 수 없는 문제다.

 

하지만 이번 대한산악연맹에서 공식적으로 입장을 표명한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한 나라를 대변하는 공식적인 산악단체에서 아귀다툼에 말려들 필요는 없다. 대한산악연맹이 고봉등정을 인증하는 기구도 아니고 입장을 표명한다고 문제가 해결되는 것도 아니다. 물론 이번 일로 오은선씨가 칸첸중가 등정에 문제가 있었다고 시인한다면 대한산악연맹은 그나마 체면을 살릴지도 모르겠다.

 

결국은 대한산악연맹 스스로 상업등반과 무관할 수 없다는 반증을 보여주었다고 본다. 어찌되었든 몇몇 이해 당사자들의 이전투구에 다름 아니다. 당분간 이러한 진흙탕 싸움은 계속될 것이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난투극으로 주변에서 구경하던 순수한 산악인들만 피멍이 들지도 모르겠다.

 

고산등반을 하지도 않는 내가 이러한 문제를 거론하는 이유는 앞에서 잠깐 이야기 했듯이 국내 등산도 다르지 않다고 보기 때문이다. 등산은 그저 자신이 좋아하는 자연을 벗삼는 행위임에도 500산이나 1000산이니 이슈를 만들어 포장하는 이들이 국내 등산인들 중에도 많다. 우리나라의 올바른 산악지형을 이해한다는 취지로 시작하는 대간이니 정맥이니 하는 산행은 산꾼이면 반드시 거쳐야 하는 관문처럼 되었다. 그 많은 사람들이 정말로 우리나라 산 지형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을까?

 

경쟁으로 히말라야 고봉을 오르는 사람이나 숫자를 채우기 위해 국내산을 오르는 사람이나 모두 산은 그저 넘어야 할 대상이다. 그들에게 등산에 대한 교과서적인 질문은 사치일 뿐이다.

 

나 역시 등산모임을 운영하면서 산에 대한 열정이 많이 식어감을 느낀다. 하물며 목표를 정하고 이루어지는 산행에 어떤 열정이 일어나겠는가. 이번 고산 등정시비를 통해 우리 내면의 산에 대한 열정을 다시금 되짚어 볼 수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두서없는 이야기를 풀어 놓았다. 8,000미터의 고봉을 넘는 것보다 내면의 산을 옮기는게 훨씬 어렵고 더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