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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서 보는 세상

공동구매 침낭과 관련한 논란을 바라보며

by 한상철 2012. 1. 10.

야영이 일반인들에게 널리 보급되면서 동호회도 많이 생기고 활동하는 사람도 등산동호회보다 많은 편입니다. 아마도 야영에 대한 정보가 아직은 많지 않은 터라 색다른 야영지에 대한 물색과 야영장비가 워낙 고가다 보니 저렴하고 유용한 장비에 대한 정보공유 등의 문제로 동호회가 활성화되지 않나 싶습니다.

 

많은 회원들이 활동하다보니 자연스레 공동구매가 이루어지게 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찌보면 공동구매를 통해 더 많은 회원들이 동호회에 참여하는게 현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최근 몇 년간 대량으로 진행해온 침낭과 관련하여 문제가 불거졌습니다.

 

처음엔 경쟁관계에 있는 동호회의 운영자가 다른 동호회의 공동구매 침낭의 원단(퍼텍스엔듀런스)에 의혹을 제기하면서 시작한 문제가 일파만파로 번져 두 동호회 회원들간의 감정문제로까지 번져가고 있습니다. 두 동호회 운영자는 모두 영리적인 목적으로 공동구매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현재까지 원단문제는 명확히 규명되지 않았으나 충전재인 다운을 속인걸 보면 원단 역시 애초 주장한 퍼텍스 엔듀런스는 아닐 듯 합니다. 원단이야 비용문제니 너그럽게 그럴 수 있다고 넘어간다고 해도 충전재를 속인건 침낭을 구매한 분들에게 큰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류시험연구원에 의뢰해 성분분석한 시험성적서에 따르면 거위털 90%라고 공지한 제품이 실은 오리털 90%의 충전재를 사용하였다는 겁니다. 오리털과 거위털은 가격차이도 많이 나지만 문제는 보온력입니다.

 

보통 거위털 다운 90% 1500그램 침낭이면 겨울용이 아니라 극한용입니다. 동계용이라고 하면 보통 영하 20도 정도의 추위까지 사용하는 제품이고 그 이상 영하 30도가 넘어가는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극한용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공동구매시 공지한 제품 정도의 스펙이면 최고의 사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구매를 진행한 캠핑동호회에서는 그만한 가격에 그만한 성능이면 괜찮은데 왜 문제가 되느냐는 분들도 많아 보입니다. 캠핑동호회다보니 대부분 야영장 등을 이용한 야영을 하는 분들이 다수일 듯싶습니다. 그런 분들에겐 영하20도가 넘는 극한 상황에서 야영할 일이 없으니 문제가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제품의 스펙을 속인 문제와는 별개로 말입니다.

 

하지만 공동구매한 침낭의 스펙은 겨울용을 넘어 극한용으로 영하 20도가 넘는 한겨울 설악산이나 지리산에서 비박을 생각하고 구입한 분들도 있을 겁니다. 지난번 폭설 때 설악산 조난사고에서 나타났던 문제처럼 위험한 상황에서 침낭이 도움이 되지 못한다면 생명을 잃을 수도 있는 문제입니다.

 

보통 보온력에서 거위털이 오리털보다 20% 정도의 우위를 갖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오리털 1500그램이면 거위털 1200그램 정도는 된다는 이야기 입니다. 1200그램 정도의 침낭이면 우리나라에서는 혹한만 아니라면 동계용으로 무난합니다. 그러니 사용해본 분들이 보온력이 사용할만하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입니다.

 

좀더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이 문제도 달라지기는 합니다. 다들 잘 아시겠지만 다운제품은 솜털과 깃털의 배합으로 이루어집니다. 솜털만으로 만들면 더 좋지 않을까 싶지만 솜털은 뼈대가 없기에 뭉치는 성질이 있어 깃털을 적절하게 섞어서 공기층을 만들어주어야 보온력이 좋아집니다.

 

거위털의 다운은 오리털의 다운보다 신축력이 높아 적은 깃털을 포함해도 공기층을 형성하지만 오리털의 다운은 신축력이 떨어져 깃털의 비율이 어느정도 있어야 제대로 공기층을 형성합니다. 그러다보니 오리털 제품은 보통 다운 80%의 제품이 일반적입니다. 거위털 다운은 95% 제품도 많이 보이고 있습니다.

 

공동구매 침낭의 성분 시험성적서에 따르면 오리털 다운의 함량이 90% 정도였던 것 같습니다. 이러한 비율을 맞춘건 거위털 90%라고 공지했기에 무게를 맞추기 위한 고육책이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오리털은 필파워가 거위털과 같을 수 없으므로 다운 90%라고 해도 높은 필파워를 갖는건 아닐겁니다.
 

사실 우리나라 기후환경에서 거위털 1500그램은 지나친 측면이 있다고 봅니다. 겨울용 침낭으로 거위털 1500그램이 일반적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것은 애초부터 사기성이 포함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 질 좋은 거위털 1500그램이 포함되지 않았을 가능성 말입니다.

 

일반적으로 해외에서 잘 만든 겨울침낭으로 알려진 제품들은 거위털 900그램에서 1100그램 정도의 충전량이 일반적입니다. 물론 다운비율도 93~95% 정도로 높다고 해도 그 차이는 그리 크다고 할 수 없습니다. 필파워만 높다고 극한용으로 사용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어느정도 충전량이 요구되는게 사실입니다.

 

거위털이라고 해도 다 같은 성능을 갖는건 아니기에 공식적으로 인정받고 사용하고 있는 태평양물산의 다운 90% 정도라면 1300그램 정도면 우리나라에서 겨울에 사용하기에 충분하다고 봅니다.

 

어쨌든 이번 사건이 잘 해결되어 아웃도어 시장에 새롭게 신뢰가 형성되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저 역시 이전에 공동구매(다행히 문제가 된 회사는 아니었습니다)를 추진한 적이 있는데 제품의 스펙을 직접 확인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 역시 이번 같은 문제가 있었다면 어쩔까 불안한 마음이 없지 않습니다.